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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스모크 텐 피노누아 2013: 산타 리타 힐스의 정점을 맛보다 처음 씨 스모크(Sea Smoke)라는 이름을 접했던 날을 기억합니다. 부호 밥 데이비스가 1999년 산타 리타 힐스에 설립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실 저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자본의 힘으로 빚어낸 와인이 으레 그렇듯, 너무 화려하기만 하거나 개성이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씨 스모크 텐(Ten) 2013 빈티지는 그런 제 오만함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습니다. 와인의 뼈대를 만드는 10가지 클론의 미학씨 스모크 텐의 정체성은 이름 그대로 10개의 각기 다른 피노누아 클론을 블렌딩하여 완성된 복합성에 있습니다.현장에서 와인을 다루다 보면, 단일 클론의 순수함이 주는 매력도 있지만 블렌딩이 주는 입체감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는 것을 체감하게 됩니다.. 2026. 4. 23.
오르페우스 앤 더 레이븐 슈냉 블랑, 기대를 뛰어넘는 남아공 와인의 매력 이마트 와인 장터라는 공간은 참 묘합니다. 평소 눈에 들어오지 않던 라벨들이 할인율과 직원분의 추천 한마디에 갑자기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니까요. 지난 하반기 장터에서 우연히 집어 든 '오르페우스 앤 더 레이븐(Orpheus & The Raven)' 슈냉 블랑 2024는 그런 충동적인 선택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화이트 와인이라면 으레 소비뇽 블랑이나 샤르도네, 아니면 샴페인 정도를 떠올리는 평범한 애호가였거든요. 까마귀가 숨겨둔 빛의 파편을 찾아서첫 모금에서 느낀 강렬한 인상은 소비뇽 블랑의 쨍한 산미와 샤르도네의 크리미한 질감이 완벽하게 공존하는 미들 그라운드였습니다. 사실 처음 라벨을 봤을 때는 그 예술적인 분위기에 압도되어 맛보다 디자인을 먼저 샀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 2026. 4. 23.
필립 샤를로팽 부르고뉴 꼬뜨 도르 2019 시음기: 기본급 그 이상의 즐거움 와인 샵 진열대에서 '부르고뉴 루즈' 라벨을 마주할 때면 늘 묘한 긴장감이 생깁니다. 5만 원 내외의 기본급 피노 누아는 사실 꽤나 도박에 가깝거든요. 어떤 날은 맹물 같은 과실미에 실망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과한 타닌 때문에 입안이 거칠어지곤 하니까요. 그런데 최근 필립 샤를로팽(Philippe Charlopin)의 2019년 빈티지 꼬뜨 도르를 열었을 때는 조금 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차가운 잔 속에서 피어오르는 머스크 향을 맡으며, 역시 이 가격대에 이런 밸런스를 보여주는 불곤은 찾기 힘들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죠. 병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의외의 세련미필립 샤를로팽의 기본급 2019 빈티지는 촌스럽지 않은 머스크 향과 농축된 붉은 과실미가 조화를 이루며, 초심자와 숙련자 모두에게 충분히 설득력 있는.. 2026. 4. 23.
와인 에어링, 무조건 한다고 좋을까? 전문가의 솔직한 경험담 처음 와인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멋진 디캔터를 하나 사면 전문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당시 아주 아끼던 빈티지 보르도 와인을 열면서, 의욕이 앞선 나머지 2시간 넘게 디캔팅을 해버렸죠. 기대에 부풀어 한 잔을 따랐는데, 입안에서 느껴진 것은 복합적인 향이 아니라 '맹물처럼 풀려버린' 밍밍한 맛이었습니다. 그날의 실수는 와인 에어링이 단순히 공기와 접촉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와인의 골격에 맞춘 세심한 제어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해준 값비싼 수업료가 되었습니다. 공기와 만나 살아나는 맛의 비밀와인 에어링은 산소를 통해 와인을 깨우는 작업이지만, 모든 와인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마법은 아닙니다. 타닌과 산도의 구조를 이해하고 시간의 줄타기를 하는 것이 진짜 실력입니다.많은 분이 와인을 열어두기만.. 2026.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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